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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破墓)>를 보러 극장에 가다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코로나시국 이후로는 일 년에 극장에 가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연례행사가 될 만큼 극장 찾는 빈도가 적어졌습니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 보는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요즘은 극장 가서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이유로 차츰 극장을 멀리한 것 같기도 하지만, 감수성이 폭발하던 시절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 진한 감동을 쉽게 느끼기 힘들어진 세월의 탓인지도 모릅니다.
입소문이 나고, 오랜만에 천만영화가 나왔다며 온갖 미디어에서, 주변 사람들이 떠들어 대도 웬만해서는 쉽게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던 제가 이 ‘파묘(破墓)’에는 희한하게 관심이 갔습니다.
안보는 영화종류가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오컬트’와 ‘공포영화’입니다. 무서운 것은 딱 질색이고, ‘굳이 돈 주고 나를 놀라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으로 공포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에서 들리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저를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어수선한 시국이기도 하고 이런 시기에 어울리는 이야기이겠다 싶기도 해고, 정말 연례행사인 '극장 가서 영화 보기'에 이 영화가 제격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역시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흥행 1위를 달리는 영화답게 빈좌석이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기대감과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는 설레임이 뒤섞인 가운데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은 영화를 보신 후 읽어보시거나, 개의치 않으신다면 계속 고고!!!
<파묘(破墓)>를 시작하다
영화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김고은과 이도현의 기내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김고은의 극 중 이름은 ‘화림’이고 이도현은 ‘봉길’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만 봐도 이 두 명은 일본과 미국으로 해외출장을 다닐 정도로 유명한 무당이며, 그들의 스타일링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무당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신세대(?) 무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LA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들을 미국으로 초대한 사람이 살고 있는 부유한 동네의 대저택으로 안내됩니다.
엄청난 부자인 이 한국인들의 모습에 화림과 봉길은 놀라고, 그곳에서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의뢰인인 아들, 그리고 병원에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림은 아기에게 휘파람을 불어 어떤 귀신이 붙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결국 화림은 이들이 이유 없이 아픈 것은 ‘묫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이라며 ‘파묘’를 하고 ‘이장’을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상덕(최민식 분)’과 ‘영근(유해진 분)’을 찾아갑니다.
땅을 보는 ‘풍수사’인 상덕과 ‘장의사’인 영근은 함께 일하고 있었고, 화림과 봉길도 이들과 함께 일을 같이 할 만큼 서로의 실력을 인정해 주는 일종의 프로젝트 팀같이 영화 내에서 묘사가 됩니다.
5억짜리 일이 들어왔다며 화림은 상덕과 영근을 설득하고 결국 이들은 한국에 들어온 의뢰인과 함께 의뢰인의 조부가 묻힌 산으로 함께 이동 합니다.
조부의 묘에 도착한 일행은 차에서 내려 묫자리를 둘러보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무덤과는 상극인 여우 떼들이 나타나고, 풍수사인 상덕이 보기에 너무나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파묘를 하고 화장을 해달라고 하면서 관은 열지 말라고 하고 숨기는 것이 너무도 많은 의뢰인을 보면서 상덕은 이 일은 못하겠다고 뒤돌아갑니다. 많은 돈을 받기로 한 일을 파투 내려는 상덕을 보며 화림을 화나서 왜 그러냐고 묻지만 상덕은 긴장한 얼굴로 파묘를 잘못했다가는 큰 화를 당한다며 거듭 경고하지만 일을 놓칠 수 없던 화림은 ‘대살굿’을 제안합니다.
‘대살굿’은 황해도 전통굿으로 쉽게 말해 ‘동물이 사람대신 살을 맞게 하는 굿’입니다. 즉, 최악의 묫자리에서 파묘를 할 때 나타날 귀신이 사람을 해하지 않고 돼지들에게 그 피해가 가도록 굿판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 대살굿은 실제 무당들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해서 요즘은 잘하지 않는 굿이라고 합니다.
화림의 설득과 돈에 대한 욕망을 못 이겨 결국 이 네 사람은 같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화림의 말대로 파묘를 할 인부들과 그 유명한 화림의 ‘대살굿’ 신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파묘를 하고 화장터로 가는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풍수사 상덕의 권유로 화장은 미뤄지게 되고, 관은 근처 장례식장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영근에게 돈을 받고 장례식장을 빌려준 직원의 욕심으로 관은 열리고, 잠시 벌어진 관틈으로 조부의 혼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혼이 빠져나간 그 관의 주인은 바로 식민지 시절 일본에게 작위와 훈장까지 받은 친일파의 것이었습니다. 파묘를 의뢰한 손주는 관 안에 일본에게 하사 받은 훈장과 각종 물품들이 조부의 친일행적과 집안 내력을 알 수 있게 해 주므로 관을 열지 말라고 했고, 관련 내용을 상덕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벌어진 관틈으로 사라진 조부의 혼은 묘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미국으로 도피해 자신이 일본에 충성해 쌓은 막대한 부로 대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자신의 후손을 찾아갑니다.
바로 미국으로 날아간 귀신은 휠체어에 앉아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창문틈으로 들어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결국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며느리마저 죽입니다.
관을 통해 혼이 빠져나갔단 사실을 알게 된 화림은 다시 혼을 관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굿을 하고, 이 소리를 들은 귀신은 잠시 봉길의 몸에 빙의해 되돌아오지만, 다시 빠져나가고 손주가 머물고 있는 플라자 호텔로 향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상덕은 손주에게 전화를 하지만 상덕의 목소리에 빙의한 친일파 귀신은 손주를 혼란스럽게 하고 결국 손주의 몸에 들어가게 됩니다.
호텔에 당도한 상덕은 직원과 함께 문을 따고 들어가지만 이미 손주에 몸에 들어간 친일파 귀신은 광화문이 보이는 창가에 서서 ‘일본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만세’를 일본어로 외치며 한 건물을 향해 경례를 합니다.
빙의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는 물을 엄청나게 마셔 대고, 손주는 목이 꺾여 죽습니다. 상덕은 조부의 손이 손주의 목을 꺾는 장면을 창문에 비치는 모습을 통해 목격합니다.
자기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친일파귀신. 이제는 손자의 아들까지 죽이러 다시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병원에 있는 아기까지 죽이려던 순간 상덕과 화림, 영근과 봉길에 의해 관이 화장터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친일파 귀신은 사라지게 됩니다.
다행히 아기는 목숨을 건지고, 더 이상의 희생은 없는 것으로 영화는 종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파묘를 하던 인부가 무덤에서 나온 뱀을 죽인 후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서 인부의 부탁으로 다시 파묘한 무덤터로 상덕은 돌아오게 되고 묘를 더 파보다가 흙아래 관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이 부분이 가장 쇼킹!)
수직으로 깊숙이 박히고, 열지 못하도록 철사로 겹겹이 쌓인 엄청나게 큰 관. 네 사람은 결국 이 관을 밖으로 빼내고 근처에 있던 절 ‘보국사’에 가서 잠시 관을 보관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잠든 저녁 이상한 소리가 나고 가축과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절을 지키는 보살님이 죽은 채 자신의 위에서 자신을 발로 밟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가위에 눌려 있는 것을 의식한 봉길은 바닥에 ‘물러날 퇴(退)’자를 써서, 잠에서 깨어나고 결국 이 사고를 일으킨 괴생명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봉길은 이 괴생명체에 대항하다가 배를 찔리고 맙니다. 이 괴생명체는 바로 친일파의 무덤자리를 추천해 준 유명한 일본무당이 이 땅에 심어 놓은 정령인 요괴였습니다. 일본 무사의 모습을 하고 접근하는 인간들은 모조리 죽여버리는 극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당의 말을 통해 일본귀신은 극악하고 절대로 죽일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이 요괴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없었던 4명의 주인공은 결국 무덤에 박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쇠말뚝을 뽑으려 요괴를 유인하는 작전을 짜게 됩니다.
작전당일 요괴가 좋아하는 물고기(은어)를 무덤 주위에 던져 놓고 화림이 시간을 끌기로 한 큰 나무로 요괴를 유인합니다.
‘축시(새벽 1시 ~ 3시)’에만 활동하는 요괴는 축시가 되자 무덤에서 나와 앞에 놓인 물고기를 먹으며 따라 나와 나무 앞에 서게 되고, 화림은 나무 뒤에서 자신이 나무의 정령인 것처럼 요괴와 대화하며 시간을 끕니다.
이 사이 상덕과 영근은 곡괭이로 파묘한 곳에서 쇠말뚝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도 쇠말뚝은 나오지 않고, 시간을 그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요괴와 대화하던 중 화림은 화를 못 누르고 죽어가는 봉길을 살려내라고 소리치면서 요괴에게 정체를 드러내게 되지만 자신이 모시는 할머니신의 등장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신이 실제로 영화자문을 해주었던 유명한 무당이라고 합니다.)
결국 도깨비불이 되어 자신이 머무는 묫자리로 들어가 끝까지 남아있던 상덕을 죽이려 하지만 상덕은 요괴에 찔려 죽어가는 와중 그 쇠말뚝은 바로 요괴자체라는 것을 깨닫고 부러진 나무곡괭이로 쳐서 요괴를 죽이게 됩니다. (* 쇠와 나무는 상극이라고 합니다.) 요괴는 죽게 되고, 큰 부상을 입었던 봉길과 상덕 또한 회복하게 되고, 상덕딸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하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습니다.
<파묘(破墓)>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
장재현 감독은 자신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 <사바하>의 오컬트영화의 매니아적 허들을 낮추려고 작작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의도와 타겟팅은 절묘하게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공포영화류의(물론 크리쳐물이 끼얹어져 있긴 하지만) 영화가 이 정도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다는 것은 장르영화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감독은 장르팬들의 기대치를 조금 훼손시키더라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그것은 영화 흥행 성적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적 장르적 특성에 충실하지 않은 점에서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컬트장르 영화의 팬이 아닌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후반부에 크리처물로 영화가 전환되어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이것도 나름 큰 이질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음에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역시 영화의 외연을 넓히려는 감독의 의도가 적중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의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거나 시대가 나은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단점도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감독의 기획과 선택이 성공한 좋은 사례이고, ‘서울의 봄’ 이후 한국영화의 흥행의 맥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파묘(破墓)>의 선명한 주제의식
영화를 보기 전 입소문을 듣고 영화 내용이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한 용감한 감독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감독이 작정하고 영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영화가 시작되며 비행기 내에서 일본인 승무원이 일본어로 화림에게 말을 하자 화림은 ‘나는 한국인’이라고 일본어로 얘기하는 장면 또한 감독이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대놓고 얘기해 주는 장면입니다.
1. 이름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화림’과 ‘봉길’입니다. 바로 ‘윤봉길’과 ‘이화림’. ‘윤봉길’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고, ‘이화림’또한 ‘윤봉길’ 의사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독립운동가 중 한 분입니다.
최민식은 극 중 ‘김상덕’이란 이름으로, 유해진은 ‘고영근’이란 인물로 불리는데 이들 역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입니다.
특히 최민식이 연기한 ‘김상덕’은 그 유명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초대위원장이기도 했습니다.
화림의 부탁으로 봉길이 입원한 병원에서 굿을 해주는 두 무당의 이름인 ‘광심’과 ‘자혜’또한 독립운동가 분들의 이름입니다.
극 중 ‘보국사’를 세운 스님의 이름은 ‘원봉’ 스님이라고 나옵니다. 바로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만드신 그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님.
영화 초반 화림과 봉길이 상덕과 영근이 함께 일하는 가게를 찾아갈 때 잠깐 보여주는 가게의 이름은 바로 ‘의열 장의사’.
2. 숫자
파묘할 곳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차의 번호판 또한 선명합니다. 상덕의 차량 번호는 ‘0815’, 영근의 차량번호는 ‘1945’, 화림의 차량번호는 ‘0301’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일과, 3.1 운동. 감독이 얼마나 선명하게 이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파묘를 한 후 상덕은 탈없이 파묘가 끝난 것에 대한 감사로 쥐고 있던 동전을 묘에 던집니다. 풍수사의 의식이라고 하는 데, 보통 십 원짜리로 넣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동전은 ‘백 원’ 짜리. 동전에 새겨진 인물은 바로 ‘이순신 장군님’입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트릴로지’의 거대한 서막을 연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영화 ‘명량’의 이순신역을 맡았던 배우는 바로 이 영화에서 ‘상덕’ 역을 했던 ‘최민식’이었습니다.
3.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들
파묘를 의뢰한 친일파의 후손인 손자는 죽기 전 시청 앞 플라자호텔에서 친일파조부에게 빙의되어 일본제국주의 만세를 외치며 경복궁 쪽을 바라보며 경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모습은 경복궁이지만 창가에 비치는 모습은 바로 ‘조선총독부’가 보입니다. 소름 끼치는 장면이죠. 김영삼이 취임하자마자 부숴버린 바로 그 ‘조선총독부’ 건물.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저런 짓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악랄한 만행을 저지른 일본제국주의.
우리나라의 수도 정중앙에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日’ 형태로 지어진 건물을 향해 일본제국주의 만세를 외치며 경례하는 파묘 의뢰인 박지용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파묘 의뢰인이 조부의 관을 열지 말라고 한 이유는 결국 관이 화장되면서 잘 드러납니다. 활활 타는 불 속을 비춰주는 카메라는 관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일본으로부터 하사 받은 훈장입니다.
식민지 시절에는 가문의 자랑이었던 훈장이 해방이 되고 난 후에는 감춰야만 하는 치부였던 것이죠. 후손들도 이를 감추기 위해서 그토록 애썼지만 결국에는 드러나고야 만나는 사실을 영화는 이 장면을 길게 보여주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호랑이를 상징하는 한반도의 허리 태백산맥 중심에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일본 요괴’라는 살아 있는 쇠말뚝을 박았던 일본 무당의 섬뜩함. 쇠말뚝은 말 그대로 쇠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 우리들 의식에 심어진 ‘정령’이라는 감독의 의도 또한 선명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이야기.
‘보국사’에서 발견된 쇠말뚝들은 독립운동가들이 빼낸 것들이고, 이들은 도굴꾼들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었고, 마지막 한반도의 허리중심에 박혀 있던 쇠말뚝을 뽑으려 했지만, 일본제국주의의 간악한 계략으로 결국 빼낼 수 없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청산하지 못한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들이 남아있고, 가장 심각한 정신적 말뚝은 아직도 건재하며 뽑히지 않았지만, 영화상으로 나마 식민지잔재청산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리만족을 하게 해 줍니다.
<‘파묘(破墓)’를 나가며>
영화의 선명한 메시지로 현재 시국처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한 편의 영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만 놓고 봤을 때도 일반 관객 중 한 사람인 저도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최민식과 유해진의 연기는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더 이상 칭찬할 것이 없지만, 김고은의 무당연기는 그녀의 필모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거론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녀의 연기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 ‘화림’이 대살굿을 하려고 무덤으로 다가가는 장면부터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깨들 들썩이고, 고개를 흔들면서 접신하는 화림의 모습은 정말로 연기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 장면입니다.
그리고 예고편에도 나온 그 유명한 숯을 얼굴에 쫘~악 긋는 장면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장면입니다. 엄청난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찾은 극장에서 만족할 만한 영화를 보았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감독의 뚝심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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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제74회 베를린영화제 공식 초청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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